Jane의 여행 일기장

[D400~401,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토레스 델 파이네 O트레킹(서킷) 7,8일차, 서킷 완주! 본문

세계여행/칠레 . 아르헨티나

[D400~401,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토레스 델 파이네 O트레킹(서킷) 7,8일차, 서킷 완주!

JaneRyu 2019. 4. 5. 17:22

3.1~3.2

Paine Grande ~ Central 26.1km, 12시간 (Central 캠프 : 1인 15000페소)


 


오늘은 가장 험난하고 고단한 하루가 될 예정. 그동안 잘 걸어왔으니 오늘도 완주할 수 있으리라 자신은 있었지만 관건은 얼마나 걸리느냐. 예상 소요시간은 10시간~11시간인데 마지막 날이라 체력이 좋지 않으니 12시간은 걸릴 것 같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조용히 텐트를 접고 5시 조금 넘어서 출발했다. 이번에도 재희네보다 일찍 출발했다. 헤드랜턴 빛 외에는 어떤 불빛도 없었다. Ranger Station 앞 푯말에서 사진 한 방 찍고 출발~

남편도 그렇고 나도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라서 얼마 걷지 않아 쉬기를 반복했다. 걷다보니 호수가 나타났다. 깜깜하지만 청명한 하늘에 달이 아직 밝았고 잔잔한 호수가 밤하늘인지 호수인지 모를 정도로 데칼코마니 같은 풍경이 아름다웠다. 사방이 잔잔하고 조용해서 우리 둘의 발소리와 숨소리만 들려왔다. 곧 해가 밝았다.

 

해가 뜨고 한참 걷는데 트레킹 첫 날부터 계속 만났던 커플이 따라오고 있었다. 가벼운 차림으로 온 걸 보니 그란데 캠프에서 전망대까지만 다녀오려나 보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란데 캠프에서 페리를 타고 센트럴로 바로 나왔단다.

 

 

8시쯤 Italiano 캠프에 도착. 이탈리아노도 작은 캠프라던데 파소보다는 나았다. 예약하고 오지 않은 건지, 이미 텐트를 접은 건지 빈 자리가 몇 개 보였다. 그늘지고 시설이 열악한 건 비슷하다. 벤치에 앉아서 주먹밥을 먹었다. 잠시 쉬다가 계곡에서 물을 보충하고 다시 출발~ 아직까진 컨디션이 괜찮다.

 

다시 호수가 나왔는데 분위기가 꼭 전북의 옥정호 같다. 맑은 날씨에 바람이 없어서 호수면에 풍경이 그대로 반영됐다. 뭔가 오묘한 풍경.

1시간 더 걸어서 France's Camp에 도착했다. 이 곳도 경사진 지형이고 텐트 자리는 모두 데크로 돼 있어서 예약 없이 들이댈 환경이 아니었다. 어제 무작정 왔으면 낭패 볼 뻔 했다. 이전의 캠프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자주 마주쳤는데 아마도 이 캠프에서 자고 전망대에 가는 길인 것 같았다. 몇 개월 전에 예약했길래...

 

캠프를 다 빠져 나오기도 전에 뒤쪽에서 따라오는 사람이 있길래 쳐다봤더니! 호진이와 재희!!! 그렇게 일찍 출발했는데 벌써 따라잡히다니!! 우린 점심 지나서 오후 쯤 만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대단한 커플이다! 재희네와 잠시 스치고 또 앞서 가버렸다.

걷다가 뒷산 쪽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국립공원인데 사냥을 하나? 싶을 정도로 몇 번씩 들려왔다. 근데 갑자기 우르릉 쾅쾅!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설산에서 눈이 떨어져 내리는 게 아닌가! 눈사태 소리가 이리 클 줄이야~ 빙하가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치는 소리 같다던데 아마 이런 소리일 것 같다.

이탈리아노 캠프에서 다음 캠프인 Los Cuernos까지는 3km 밖에 안 되는데 소요시간은 2시간으로 안내돼 있다. 왜 그럴까 엄청 궁금했는데 이유는 걷기 힘든 바위길이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호수변이 나오고 곧 금방 캠프가 나올 것 같았는데 자갈과 큰 바위로 가득 찬 길이 계속 이어졌다. 그래서 발목도 아프고 속도도 거의 낼 수 없어서 두 배는 길게 느껴졌다.

10시 45분쯤에 푯말이 나오고 캠프 도착. 이 곳도 대부분 데크로 이루어진 캠프장이어서 들이댈 곳이 거의 없는 듯. 예약하기 힘든 곳은 아예 기대하지 않는 게 맞는 것 같다. 날씨가 어찌나 맑은지 산장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주 그만이다~

아직 오전이지만 출발한지는 벌써 6시간이 다 돼가니 넘 힘들어 산장 데크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재희네는 벌써 점심을 먹고 쉬고 있었는데 둘도 힘들어 보인다. 한 시간은 쉬어야하는데 갈 길이 머니 여유를 부릴 수가 없다. ㅜㅜ

이후 코스는 내내 같은 호수와 같은 풍경을 오른쪽에 두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 반복됐다. 그래서 O코스보다 체감으론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마지막 날 너무 오래 걸어서 그렇게 느끼기도 했겠지만 넷 다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중간 전망대를 갔으면 느낌이 좀 달랐을라나?

도중에 넓은 바위로 이루어진 전망대에 앉아서 간식을 먹었다. 이 곳에선 풍경이 멋지다 생각했는데 비슷한 전망대가 계속 있어서 나중엔 그냥 지나쳤다.

어제부터 느낀 거지만 W코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마주쳐도 딱딱한 표정으로 지나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원래 길 옆으로 좀 더 평탄한 길을 찾아 걷는 사람들이 많으니 여러 갈래의 길이 만들어져 훼손된 곳도 많았다. 나중에 Welcome center의 국립공원 홍보 동영상을 보니 삼봉 전망대 가는 길도 사람들이 자꾸 새 길을 만드는 바람에 훼손된 곳이 많아져 코스를 새로 디자인하여 아예 데크를 깔았다고 한다. 그 외 길은 푯말로 출입금지 표시를 해두었지만 그래도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듯.

도착 1시간 전까지는 사진이 별로 없다. 자주 쉬고 자주 간식으로 당보충을 해봐도 체력이 바닥나 속도가 점점 줄었고 사진 찍을 생각도 싹 사라졌다. 풍경도 비슷해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체력은 바닥인데 자꾸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코스 중 마지막 호수에 도착하고 그 옆 오르막을 걸을 때는 무릎도 아프고 너무 힘들어서 발을 질질 끌며 한 걸음 한 걸음 겨우 올랐다. 그러다보니 자꾸만 자갈이나 나무조각에 걸려 미끄러졌다. 마지막 힘을 짜내고 짜내며 걸었다. 호수를 지나니 탁 트인 초원이 나오고 저~ 멀리 Las Torres Hotel이 보였다. 아직도 저만큼 걸어야 한다니....

그래도 이 곳 풍경은 좀 괜찮아서 그 덕에 조금 힘이 났다. 넓은 들판을 지나고 마지막 흔들다리를 건너서 짧은 오르막까지 왔다. 그 짧은 오르막이 어찌나 힘들던지.. 진정 욕이 나왔다. 호텔을 지나서 캠프 표지판이 나올 때까지가 천길 같이 느껴졌다.

오후 5시쯤 도착. 정말 12시간이 걸렸네. ㅜㅜ 넓은 잔디밭에 텐트들이 보이고 재희네가 벌써 텐트를 치고 있었다. 첨엔 완주하는 날 서로 얼싸 안고 수고 했다고 토닥토닥할 줄 알았는데... 넷 다 너무 힘이 들어 다 죽어가는 얼굴로 텐트 칠 장소와 가격이 얼만지 같은 감흥 없는 대화만 간단히 나눴다.

센트럴 캠프는 자리가 아주 널널했다. 시설은 그란데나 딕슨보다 좋지 않았는데도 가격은 더 비쌌다. 좋은 점은 산장 레스토랑 겸 바에서 삼봉이 보이는 훌륭한 풍경을 볼 수 있고 맥주 가격이 조금 저렴하다는 것.

 

텐트를 치고 샤워를 한 후 테이블에 모였다. 그제서야 모두 정신이 좀 났는지 웃으며 농담할 정도가 됐다. 마지막 남은 라면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완주를 기념하기 위해 맥주를 마시러 산장 바에 갔다. 근사한 뷰를 앞에 두고 우린 맥주에 또 다시 훌라를 쳤다. ㅋㅋ 트레킹 고수 다 됐다! 8시 이후에 맥주를 사니 Happy Hour로 더 저렴했다. 그동안엔 비싸서 한 캔씩만 마셨는데 오늘은 날이 날인만큼 두 캔씩!

호진과 재희는 다음 날 해 뜨는 시간에 맞춰 삼봉에 가기 위해 새벽 3시에 전망대에 간다고 선언했다. 남편도 여기까지 와서 삼봉을 안 본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난 미련 없이 포기했다. 비가 예보돼 있기도 했고, 왼쪽 무릎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았다. 원래는 Chileno 캠프에서 갔어야 하는데 센트럴에서 가면 왕복 9시간은 걸린다고 한다. 하... 9시간... 무리다....

핑계겠지만 나에겐 이미 완주했다는 의미가 커서 삼봉을 안 본다 해도 별로 미련이 없었다. (그 땐 그랬다...) 며칠 있으면 비슷한 풍경의 피츠로이를 갈거니까... 핑계를 삼았다.

 

다음 날, 8일만에 진짜 맘편히 늦잠을 잤다. 보슬보슬 빗소리를 들으며 텐트 안에서 마지막 믹스 커피와 전날 사둔 카스테라 빵으로 아침을 먹었다. 캠핑하면서 먹는 밥은 항상 꿀맛!

12시에나 돌아올 줄 알았던 재희네가 10시 반에 불쑥 나타났다. 진짜 이 커플은 못 당한다~ 우리가 일어났을 때는 삼봉에 구름이 잔뜩 꼈었는데 다행히 일출일 때 아주 잠깐 구름 없이 삼봉을 볼 수 있었단다. 재희도 힘들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이 무릎으로 안 가길 잘한 것 같다.

짐을 싸서 Welcome Center로 갔다. 1시 셔틀버스를 기다리며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유머스러운 미국 아줌마와 나홀로 미국 여행자. 나중에 피츠로이에서 이 나홀로 미국 여행자를 또 만났다. 나탈레스로 돌아가는 버스는 왜인지 모르지만 터미널에서 살 때보다 더 쌌다.

 

이전에 머물던 The Singing Lamb에 하루 일찍 도착. 방이 없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9인실이 남아 있었다. 원래 일정이 9일이였는데 8일 만에 왔으니 장비 렌탈 비용 하루치를 돌려받았다. 할인받은 가격으로 돌려받을 줄 알았는데 쿨하게 원래 가격으로 하루치를 돌려주어 더 이득이었다. 돌아와선 폭풍 짐정리와 빨래~! 이렇게 우리의 서킷 트레킹은 끝이 났다!

 

O트레킹을 마친 소감은, 두 말 할 것 없이 한 단어로 대신할 수 있다. 성취! 총 94.9km, 44시간. 아름다운 풍경은 둘째 치고 10킬로 넘는 가방을 메고 하루 평균 15킬로 되는 산 길을 6일 동안 걸었다는 것! 20대 젊은 사람들도 부담스러운 코스를 이 나이에 해냈다는 게 진심으로 뿌듯하다!

출발하기 전 겁먹고 걱정했던 내 스스로가 얼마나 바보스러웠는지. 해보지도 않고 미리 걱정하는 이 소심한 성격에 큰 가르침을 주었다. 해보지도 않고 겁먹지 말자! 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단단하다! 도중에 돌아서게 되더라도 우선 해봐야 한다는 것! 앞으로 우리가 한국에서 살아가야 할 수 많은 힘든 날도 오늘을 생각하며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세계여행 중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단연! 서킷 트레킹에 도전하고 끝까지 완주해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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