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e의 여행 일기장
[D397,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토레스 델 파이네 O트레킹(서킷) 4일차 본문
2.26
Dickson ~ Los Perros 11.8km, 5시간, (Los Perros 캠프 : 1인 5000페소 or 8달러)
다시 트레킹 시작하는 날. 오늘도 날씨가 좋을 모양인지 일출이 깨끗하고 아름답다. 출발 전에 넷이 사진 한 방 찍고 8시 출발~
어제 온 비 때문에 온통 진흙길이다. 어제 이보다 더 질퍽한 길을 비 맞으며 갔을 사람들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들 대부분은 트레킹이 일상인 양 이정도 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보였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경사가 있는 산을 올라야 하니 비가 오면 위험해서 생각지도 못하는 일인데 유럽도 그렇고 남미도 대부분 오르막보다는 평지나 완만한 곳을 걷는 코스가 일반적이라서 그런 것 같다.
팅팅 부은 얼굴로 무표정 인증샷~ㅋㅋ
조금 올랐는데도 캠프 뒤쪽 먼 풍경까지 보인다. 1시간 정도 올랐을 때 넓은 평지가 나오고 전망대에 도착했다. 전망대에서는 설산들이 줄줄이 보였다. 조금 더 가니 시원스런 계곡이 흐르고 작은 개천도 지났다.
재희는 이 날 코스가 제일 지루했단다. 그도 그럴것이 별 볼일 없는 숲길이 점심 때까지 계속 됐다. 걷다 보니 계속 눈에 띈 식물이 있었는데 지금이 열매가 열리는 철인지 온 사방에 빨갛고 예쁘게 달려 눈이 자꾸 갔다. 어찌나 귀엽게 올망졸망 매달렸는지 보고 있으면 힘들어도 미소가 절로 나왔다. 요 예쁜 걸 8일 동안 내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걷다보니 점심 때가 돼서 핫도그를 챙겨 먹었다. 후딱 점심만 먹고 다시 걷기 시작. 곧 나무는 별로 없고 자갈이 깔린 오르막이 시작됐다. 이 곳에서부터 거리가 좀 떨어진 산 사이에 쌓인 빙하가 보였는데 거기까지 가야한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걷다보니 빙하가 코앞이다. ㅋㅋ 거의 다 올랐을 쯤부터 무지막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이런 강한 바람이 부나 했는데 다 오르니 알 것 같았다. 빙하가 흘러 호수를 이루고 산 사이에서부터 불어오는 빙하 바람이 호수 덕분에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모래가루가 함께 날리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여서 “푸하! 여기가 무슨 에베레스트냐! 이 바람은 모냐!!!” 욕이 나올 지경이었다.
사진만 급하게 찍고 얼른 내리막으로 향했더니 거짓말처럼 바람이 잔잔해졌다. 이후로 계속 자갈 가득한 계곡을 걸었다. 자갈 때문에 걷기가 너무 불편했다. 캠핑장이 있을 법한 장소도 보이지 않았다.
오후 1시쯤 자갈 계곡 옆으로 숲이 나타나고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숲으로 들어서니 바람도 없고 곧 캠핑장이 나타났다. Ranger Station부터 지나쳐야 하는데 Check-in만 적고 예약증은 묻지도 않았다.
캠핑장 Check-in은 Reception에서 따로 하고 자리부터 잡았다. 딕슨 캠프에서 듣던 대로 이 곳은 그늘지고 시설도 훨씬 열악했다. 쓰레기도 버릴 수 없고 개수대도 식당과 떨어진 곳에 두 곳 뿐이었다.
우리가 일찍 온 건지 식당엔 아무도 없었다. 우선 저녁 식재료와 코펠 등을 식당 선반에 올려두고 낮잠을 잤다. 2시간 쯤 자다가 혼자 일어나서 식당에 가봤다.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우리 물건들을 둔 선반 앞에서 한 남자가 3분 요리를 살펴보고 있었다. (트레킹 내내 마주친 훈남이었는데 매우 친절해서 재희랑 나랑 만날 때마다 무지 반가워했다. ㅋㅋ) 내가 물건을 챙기자 어떻게 먹는거냐고 묻는다. 설명을 해주고 물건을 살펴보니 쌀봉지가 뜯겨 있고 누군가 만진 흔적이 있었다. 또 다른 남자가 오더니 우리 코펠 뚜껑을 들고 와서 나눔하려고 둔 건 줄 알고 썼다는 거다. 내가 식당에 들어서서 물건을 챙길 때부터 사람들이 조용히 날 쳐다본 이유가 우리 물건들이 나눔인지 아닌지 의아해하며 만져본 후라 그랬던 것 같다.
텐트로 가서 재희네와 남편을 깨우고 다시 식당으로 가서 자리가 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랬더니 코펠 뚜껑을 썼던 남자가 스팸 캔을 들고 오더니 “정말 미안해. 이 선반 물건들이 나눔하는 건 줄 알고 내가 조금 먹었어. 어떡하지? 원하면 우리 음식을 좀 나눠줄게.” 하면서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난 괜찮다고 했는데 나중에 큰 초콜렛을 하나 주었다.
친구들한테 얘기했더니 황당해 했는데 별 다른 수가 없었다. 이름도 안 써놓고 놔둔 것도 잘못이기에... 우리 모두 이 원인을 다 찌그러지고 주워온 듯 생긴 렌탈 코펠 탓으로 돌렸다. ㅋㅋ
저녁 밥을 하기 전에, 내일 점심으로 먹을 주먹밥을 미리 만들어 놓기로 했다. 가장 힘든 구간을 걷기 때문에 든든히 먹기 위해서! 스팸을 두껍게 한 장씩 넣은 주먹밥을 하려고 했는데 1/3을 다른 이가 먹어버리는 바람에 잘게 으깨고 후리가케를 잔뜩 넣어서 만들었다.
저녁밥은 3분 육개장! 간단하게 해먹을 수 있어서 정말 잘 산 것 같다. 1팩 남은 와인도 내일 가방 무게를 줄이기 위해 다 마셔버렸다.
사실은 이 날 남편과 말다툼을 했는데 피곤해서 서로 예민했는지 잘 풀어지지 않았다. 옆에서 난감했을 재희와 호진에게 미안했지만 오래 함께 다니다보면 서로 좋은 모습만 보일 순 없다고 생각한다. 밤에 풀어지긴 했지만 부부가 장기 여행을 한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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