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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95~396,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토레스 델 파이네 O트레킹(서킷) 2,3일차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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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95~396, 칠레, 토레스 델 파이네] 토레스 델 파이네 O트레킹(서킷) 2,3일차

JaneRyu 2019. 4. 5. 14:14

2.24~2.25

Seron ~ Dickson 18km, 7시간, (Dickson 캠프 : 1인 5천 페소 or 8달러/ 현지 텐트 2인용 2만페소 추가)


 


거의 10시간을 푹 잤더니 둘째 날 컨디션 최고~ 그래서 하루 종일 쳐지지 않고 빠른 걸음을 유지했는데 호진이도 깜짝 놀랐단다. 그만큼 충분한 잠이 중요한 것 같다.

새벽 6시 반에 기상해서 미소스프와 누룽지로 아침을 해결했다. 쌀쌀한데 뜨끈한 국물을 먹으니 속이 든든~ 재희네가 첫 날은 우리와 함께 걸었지만 쉬면 더 힘들다는 얘기를 예전에 들었던 터라 우리에게 맞추지 말고 각자 걷자고 했다. 그래도 비슷한 시간에 딕슨 캠프에 도착하려면 우리가 먼저 가야할 것 같아 한 시간 먼저 출발했다.

Seron 캠프의 일출

 

간편한 미소스프와 누룽지

딕슨을 향하여 출발~

 

초반에 오르막이 시작됐는데 처음엔 완만하다가 나중엔 자갈산을 힘들게 올라야 했다. 그래도 길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가파른 자갈산을 오르기 전 호수가 나왔다. 바람이 없어 설산이 호수에 그대로 반영되고 아래는 멋진 나무들이 우거져 마치 달력 사진 같은 풍경이었다.

초반의 완만한 오르막

이후로 자갈산을 헐떡이며 올랐더니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 설산들이 어깨를 줄줄이 맞대고 늘어선 환상적인 뷰가 나타났다. 앞서 사진을 찍고 있던 미국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사진을 찍어 주겠단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이런 자세로 뽀뽀 사진을 찍어야 돼요!” 하면서 포즈까지 보여주었다. 위트 있는 유머에 쿵짝을 맞춰 줬더니 자신이 더 신나했다. 이후로도 이 분들을 포함해서 첫날부터 같이 시작했던 사람들은 트레킹 하는 동안 매일 보게 되어 조금씩 친해지게 됐다.

미국 아줌마가 추천해 준 포즈로 한 컷!

 

1시간 정도의 오르막 이후로는 완만한 내리막과 평지가 계속 됐다. 걷는 내내 보이는 설산과 때묻지 않은 초원, 초원 중앙에 흐르는 강이 어떻게 찍어도 화보 같은 풍경이 됐다. 나이 들어 죽어 쓰러진 나무조차도 자연 속에선 그저 어우러지는 한 일부일 뿐이며, 심지어 또 다른 생명들의 터가 되고 있었다.

풍경화 같은 색감

 

걷다가 12시가 되어 한 쪽에 앉아 설산 풍경을 감상하며 싸온 핫도그를 먹었다. 다시 걷기 시작한지 30분 만에 Coiron Ranger Station에 도착했다. 이 곳은 숙박시설은 없이 휴식 시설과 검문 초소만 있었다. 예약증은 호진이만 가지고 있었고 우리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 몰라서 사정을 얘기했는데 그렇다 해도 예약증 확인 없이는 통과할 수 없으니 친구들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단다.

 

Coiron Ranger Station

다행히 30분 후에 재희네가 도착했다. 25일 예약을 못해서 통과가 안될까봐 엄청 쫄면서 보여주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25일은 왜 예약이 없냐고... 사실대로 얘기했더니 앞으로 계속 문제가 될테니 딕슨 산장이나 다음 산장에 예약이 가능한지 알아보고 25일 예약증을 확보하라고 했다. 우린 검문을 이렇게 철저히 한다면 대충 어찌 둘러대는 방법은 안 통하겠구나 싶어 도착하면 방법을 강구하기로 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웬일인지 전날에 비해 몸이 가뿐해서 나도 모르게 속도가 붙었다. 재희네와도 벌어지고 남편보다 앞서 걷게 됐다. 기분 좋은 바람이 계속 불어 귓가에는 어느새 뒤에 있는 남편의 발소리도 묻히고 그저 바람소리와 풀냄새 뿐이었다.

인생도, 부부도 이런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함께 걷다가도 각자 나름의 속도와 보폭에 맞게 걷게 되고, 그러다 보면 대부분의 시간은 ‘나 혼자만의 걷기’. 혼자 걷다가도 뒤엔 남편이 있고,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내가 돌아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만큼의 거리는 필요하지.

 

바람 소리 들으며 걷다가 짧은 오르막 후에 깜짝 놀랄 풍경이 펼쳐졌다. 멀리 보이는 설산 머리 꼭대기를 쓰다듬듯 넘어가는 구름이 정말 기이했다. 거기에 산 밑의 넓은 들판엔 얌전히 캠프와 산장이 있고, 주변을 강이 휘돌아 완벽한 풍경화를 연출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풍경 좋은 캠핑장을 제법 다녔는데도 이렇게 조화로운 곳은 드물었던 것 같다.

설산을 쓰다듬는 구름 넘이

뒤로 보이는 Dickson 산장

가파르고 미끄러운 내리막길을 천천히 내려가 산장까지 넓은 잔디밭을 걸어갔다. 이 곳에서도 Ranger의 확인을 받고 리셉션이 있는 건물로 갈 수 있었다. 넓은 캠프인 만큼 시설도 깔끔하고 좋았다. 무엇보다 잔디밭이 넓고 주변 풍경이 아주 그만~

먼저 가고 있는 재희와 호진

 

세 명은 텐트를 치고 나는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하며 우리의 상황을 설명해주고 조언을 얻었다. 직원들이 여럿 있었는데 질문을 많이 했는데도 농담을 섞어가며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먼저 날씨를 체크해보니 다음날 하루 종일 비소식이 있었다. 자리가 여유로운 Dickson, Los Perros, Grey 캠프 중 하루 연장해서 예약이 빈 날짜를 채우고, 자리가 없는 Passo를 건너 뛰고 Los Perros에서 Grey까지 한 번에 가는 방법 밖에 없었다. 나머지 예약은 같은 관리소라 변경하는 건 쉽다고 했다. Los Perros는 그늘지고 눅눅하며 시설이 열악해 핫샤워도 불가능하니 시설 좋은 Dickson이나 Grey에서 이틀 지내는 게 나을 거란다. 그래서 둘 중 어느 곳을 더 추천하냐고 했더니 직원들끼리 투표를 하더니 Dickson이 낙찰됐다. ㅋㅋ

그리고 W코스 캠프 예약을 못해서 직접 가서 자리를 구하려고 하는데 예약증 없이 Ranger Station을 통과 할 수 있을지 물었다. 직원 말로는 Grey까지는 검문이 철저하지만 이후로는 대충하고 없어도 통과는 시켜줄거란다. 어느 정도 안심이 된다. O트레킹을 완주 못 할거란 생각에 심난했는데.... 문제는 캠프장에 자리가 있을지....

텐트를 치고 쉬다가 저녁을 먹었다. 무거운 감자와 양파를 줄이기 위해 카레를 해먹기로 했다. 요리를 하고 있자니 속속 도착하는 트레커들로 식당은 꽉 찼다. 어제부터 본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인사도 나누고 서로 만든 음식도 구경하며~ 사진을 찍어줬던 잼있는 미국 아주머니에게 덕분에 베스트샷을 건졌다고 했더니 엄청 좋아하면서 남편에게도 자랑을 한다.

우리 옆에 앉아 있던 칠레 여자 두 명이 음식을 하는데 남미에서 보기 드문 김을 갖고 있었다. 우리가 신기해하자 먹어보라고 나눠줬다. 칠레에서 김을 생산해서 일본에 수출하면 가공해서 다시 수입해 온다고 한다. 한 명이 요리사라고 소개했는데 어쩐지 마늘하며 절인 채소, 홍합까지 요리재료가 제대로다.

하루 여유가 생기니 나도 오늘은 와인을 마셔보기로 했다. 오늘도 심심풀이로 설거지 내기 훌라를 쳤다. 인터넷이 안되니 할 거 없는 쉬는 시간에 카드게임은 유일한 놀이였고 생각보다 큰 재미를 주었다. 우리 뿐 아니라 카드게임 하면서 쉬는 시간을 채우는 트레커들을 자주 봤다.

 

새벽 하늘에 별들이 엄청 많았다

날씨 예보는 정확했다. 새벽부터 시작된 가랑비가 다음 날 오후 5시까지 계속 이어졌다. 비가 제법 와서 텐트가 다 젖어도 짜증내는 사람 하나 없이 다들 짐을 챙긴다. ‘오늘도 걷는다’는 말처럼 유유히 빗속을 걷기 시작하는 트레커들. 정말 대단하다. 우리 넷은 오늘 쉬길 잘했다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옛말이 딱 그대로다. 미세한 구멍으로 세는 물이 바닥에 고여 방수포를 깔았는데도 점점 텐트 바닥이 젖어들었다. 하루 종일 비가 오면 도저히 텐트 안에서 잘 수 없을 것 같아 캠프에 쳐져 있는 텐트를 하루 빌리기로 했다. 원래는 4인용은 될 법한 크기의 텐트를 두 명이 사용하니 자리가 넓어 넘 좋았다. 저녁엔 재희네랑 넷이 텐트에서 훌라를 치기도 했다.

희한한 구름들을 볼 수 있었던 토레스

하루 종일 할 일없이 식당에 앉아 수다 떨고, 밥 해먹고, 멍때리는 게 다였지만 만족스런 휴식이었다. 편했던 Dickson을 떠나자니 많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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