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e의 여행 일기장
[D26~28, 네팔, 포카라/카트만두] 포카라 집으로... 본문
우리가 포카라로 돌아와서 3박 4일동안 한 것은 역시 아무것도 없다. 그냥 쉬고, 낮잠 자고, 밥 먹으로 코앞 식당에 가고, 사람들과 수다 떤 게 전부다. 산에 가기 전, 다녀온 후에 쉬는 곳이라서 이 마을이 이렇게 조용한 것인지 모른다. 도착 다음 날 맡긴 세탁물 무게는 무려 11KG이였다. 여름 옷 몇 벌을 제외하고 가져온 대부분의 옷을 빨았다. 산에서 내려오니 모든 게 달리 느껴졌다. 따뜻한 샤워, 편안한 침대, 빵빵 터지는 와이파이, 즐비한 상가와 식당들, 익숙한 사람들... 처음 포카라 숙소에 왔을 땐 불편한 것이 있었는데 돌아오니 이 곳은 5성급 호텔이였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누리고 얼마나 낭비하며 살았는지...
긴장이 풀려서 매우 피곤했다. 다리도 뻐근해서 어그적어그적 내려오는 폼이 에베레스트라도 다녀온 사람 같았을거다. ㅋㅋ 산에서 체한 게 겁이 나서 현지식보다 비싸긴 하지만 계속 한식을 찾게 됐다. 40년 넘게 먹고 살아온 식재료는 몸이 먼저 안다. 산장에서 맨밥을 시켜서 직접 죽을 쑤어 먹었는데 라면 국물과 김치 통조림을 한 입 먹고 어찌나 힘이 나고 군침이 돌던지... 빈 속에 매콤한 라면 국물이 찌릿찌릿 뒷목까지 전기가 통하는 것 같았다. 2년 전에 프랑스 여행 때도 현지식으로 보름을 잘 먹고 다녔는데 몸이 예민해진게 느껴진다.

밥 먹고 숙소로 돌아오면 1층에서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하며 몇 시간씩 앉아 있었다. 마침 이제 막 들어온 중년의 남자 세분이 있었는데 산행 전 걱정스런 얼굴과 어리둥절한 모습이 우리가 처음 왔을 때를 연상시켰다. "우리가 저런 표정이였구나~" 하니까 사장님이 "더 안 좋았어요! 특히 남편분이 들어오는데 표정이 장난 아니였어요~." 하시는거다. ㅋㅋㅋ 남편이 그제야 고백하는데 카트만두 거리 모습에 충격을 받고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 뿐이였단다. 어쩐지 난 사진도 많이 찍고 먼지는 나지만 거리가 내다보이는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싶었는데 남편은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직진만 해서 따라 잡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었다. 그랬구나... 말은 안 했지만 충격이 심했구나...^^;; 난 이집트에서 한 번 경험한 바가 있어서 각오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이런 여행지가 처음이라 힘들었나보다. 괜스레 미안하지네... ^^

산에서 내려오는 버스를 타기 전에 안내원이랑 대화를 하다 우리가 세계여행 중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직장은 어쩌고?" "관두고 왔지!" "오우~ 노 굿! 사람은 일을 해야 돼. 하루 이틀 놀다보면 지루해져~"
"근데 한국인은 일을 너무 많이 해." "그건 그래. 내가 아는 사람도 한국 가서 일을 너무 많이 하다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서 자살을 했어." "You see! That's why I'm here!" "but. Strange. We have no job. and we have no time, too!" "엥? That doesn't make any sense." "I don't know. but it's true." 이해가 안 갔다. 일할 곳도 없는데 일할 시간도 없다니? 근데 며칠 숙소에서 하는 일 없이 지내면서 깨달았다. 백수가 더 바쁘다하지 않던가... ㅋㅋ 놀면 이상하게 하는 일 없이 시간이 빨리 간다. 이건 만국 공통인가보다... ㅋㅋㅋㅋ 하지만 이들은 많이 벌지 않아도 사는데 문제가 없다고 큰 걱정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저마다 환경이 달라서이기도 하겠지만 조금 부럽기도 했다.

마지막날 저녁에 밥 먹고 또 다시 1층에서 사장님과 대화 삼매경. 조심스럽게 자신의 포카라 산행 경험과 생활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해주셨다. 처음 정착하셨을 때 어려웠던 일들, 산행하다 죽을 고비를 넘긴 일...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모든 걸 내려놓게 돼셨단다. 그리고 지금과 전혀 다른 일을 하다가 네팔에 와서 시작한 게스트하우스 일이 자신에게 이렇게 잘 맞는 줄 몰랐다고 하셨다. 얘기를 듣고 나니 왠지 모르게 위로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 후에 되돌아보면 멋진 풍경보다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더 많은 감동과 추억을 얻게 된다. 그래서 곧 맞이할 인도네시아가 더 기다려진다. 첫 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어떤 사람들일까... 걱정 반, 설렘 반~
'세계여행 > 네팔' 카테고리의 다른 글
[D24~25, 네팔, 푼힐트레킹] 천의 얼굴 (0) | 2019.03.29 |
---|---|
[D21-23, 네팔, 푼힐트레킹] 산의 삶 (0) | 2019.03.29 |
[D17~20 , 네팔, 포카라] 홀린 듯 느림에 빠지다 (0) | 2019.03.29 |
[D16, 네팔, 카트만두] 다른 세상의 골목 (0) | 2019.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