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7~20 , 네팔, 포카라] 홀린 듯 느림에 빠지다
[포카라 정보]
- 버스 : 타멜거리 한식당 '축제'에서 예매(대부분의 호텔에서도 가능한 것 같음)
아침 8시 버스정류장(예매할 때 위치 알려줌)에서 버스 탑승(1인 700루피), 1시간 반~2시간마다 휴게소 들림. 먹을 것이 마땅이 없으므로 전날 빵을 사가는 것이 좋음. 8시간~9시간 이동.
- 숙소 : 윈드폴(Windfall) 옥상 화장실 딸린 독립된 방이라 1200루피. 아침 식사 300루피(오전 8시 반).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300루피. 제로 갤러리 카페와 가까움.
- 페와호수 : 입구쪽이 경치가 좋고 배타기 좋음. 윈드폴은 가장 안쪽에 있음.
포카라는 작은 마을일거라고 생각했는데 훨씬 컸다. 트레킹을 하기 위한 거점도시인지라 대부분 관광객을 위한 호텔과 레스토랑, 쇼핑을 위한 가게들이 주거리를 따라 늘어서있다. 택시를 타고 페와 호수 가장 안쪽의 유명한 윈드폴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다. 포카라는 카트만두보다 훨씬 여유있고 정돈된 분위기다. 짐을 풀고 하루 종일 먹지 못한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으러 유명한 제로 갤러리 카페로 갔다. 젤 맛있다는 탕수육과 김치제육덮밥에 맥주 두 병을 시켜놓고 나서야 호수의 풍경이 들어왔다.
마침 노을이 지는 때라 호수에 반사된 노을 빛은 참 아름답고 따뜻해서 오랜만에 여행지의 여유를 느낄 수 있게 해줬다. 솔직히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 바쁘게 돌아다닌 날도 없고 심지어 날씨 덕에 하루 종일 방안에서 뒹굴뒹굴하며 '느린 여행'이라는 신조를 자의 또는 타의로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그치만 마음은 초행자답게 내내 쪼그라져 있던지라 탁 트인 마당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이 맥주 한 잔의 여유로움이 마치 처음인 듯 참 반가웠다.
여행자에게 맥주 한 잔 없는 여유란 있을 수 없는 법. 지금은 술을 자주 하지 않지만 우리 부부는 연애 때부터 나름 술로 사랑을 다져온지라 이런 술 한 잔이 주는 기쁨을 누구보다 잘 안다.
너무 배고파 3인분은 족히 넘는 양을 흡입하듯 먹고 배 두드리며 숙소로 걸어가는데 남녀 한 커플이 요가인 듯 묘기를 부리고 있었다. 네팔에 넘어 오면서 느낀 바지만 네팔에서 마주치는 여행자들의 포스는 절대 초보자의 그것이 아니다. 뭔가 히피와 도사의 모습을 섞은 비쥬얼 들이다. 범상찮다.
둘째 날은 트레킹을 위한 퍼밋과 팀스를 받으러 호수 초입까지 설렁설렁 왕복 2시간을 걸었다. 참 설명할 수 없는 묘함이 있는 도시다. 숙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사장님 얘기를 듣자면 이곳에서 한 달은 짧은 축에 속하고 다섯 달 넘게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는데 당췌 뭘 하면서 그리 오래 있을까 의문이였다. 근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이상하게 우리도 느린 이 도시의 생활방식에 빠져들고 있었다. 하는 일 없이 그저 끼니 떼우러 호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왔다 갔다 하는게 다인데도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사랑방 같은 1층 쇼파에 앉아 심심해서 왔다갔다 하는 숙소 사람들이나 물건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 얘기를 듣다보면 또 한 두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뭔가에 홀린 것 같다. 이 곳에 오게 되면 다들 이런 느림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홀려서 그냥 눌러 앉게 되는가 보다.
이렇게 저렇게 날이 지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여기 온지 벌써 세째 날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첫째 날, 저리 잔잔한 호수에서 지루하게 보트를 왜 탈까? 했는데 왠지 며칠 후면 타러 갈 것 같은 기분이다. 지금은 저것도 참 재미나 보이는 이 이상한 홀림....
숙소 사장님이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미리 '한국하고 다르니 뭘 많이 하려고 하지 마시고 많이 내려놓고 오세요~'를 표어처럼 말씀하신다는데 이젠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내일은 드디어 트레킹 시작 날이다. 몇 해 전부터 체력이 많이 떨어지고 체질도 예민해져서 긴 트레킹에 겁을 먹고 우리는 가장 짧다는 푼힐 코스만 가기로 했다. 걱정도 되면서 설렌다. 티비나 영화에서만 보던 그 유명한 설산을 내 눈으로 본다니... 오늘은 푹 쉬어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