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에콰도르

[D336~338, 에콰도르, 바뇨스] 바뇨스 응급실, 구급차로 도로를 가르다!

JaneRyu 2019. 4. 4. 09:48

12.27~12.29

 

[바뇨스 정보]

-키토~바뇨스 이동 : 남부 터미널에서 탑승, 13번 창구 주변이 바뇨스행, 4.5달러, 3시간 반 소요

-시내 정보 : 구글맵보다는 맵스미 이용 추천(주요 관광지 버스 정류장 표시돼 있음), 중앙에 시장과 슈퍼마켓 있음


키토에서 오전 11시 버스를 타고 오후 3시 전에 바뇨스 도착. 연말이라 평소보다 비싼 가격으로 에어비앤비를 급하게 구했다. 급구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다. 방이 2개에 침대도 아주 편했고 주방이 약간 좁긴 했지만 도구들이 보기보다 아주 괜찮았다. 호스트도 바로 옆에 살아서 도움이 필요할 때 편했다.

도착하자마자 장을 보러 갔다. 일주일이나 있을 예정이라 양배추 김치도 담그고 간만에 과일도 풍성하게 샀다.

 

 

예상치 못한 일은 다음날 일어났다. 피로가 누적돼서 다음날 오후까지 방에서 밀린 블로그 올리며 빈둥거리고 있었다. 늦은 점심으로 비빔국수를 맛있게 먹구선 남편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한다. 근데 아무래도 배탈은 아닌 것 같다고...

짧은 시간 안에 급격하게 통증이 심해져서 병원에 가보자고 나섰다. 통증 정도와 증상이 8년 전, 완도에 놀러갔을 때, 요로결석으로 새벽에 병원으로 달렸던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에서부터 당기기 시작해서 배 쪽으로 통증이 이동하는 것도 그렇고 멀쩡하다가 급작스럽게 통증이 심해지는 것도 비슷했다.

작은 마을에 큰 병원이 있기나 할까 싶었는데 다행히 병원이 현대식에 깨끗해 보여 안심이 됐다. 우리가 내리는 걸 보고 직원이 바로 응급실로 안내해줬다. 의사를 만나기 전 짧은 시간 동안 남편의 얼굴은 점점 사색이 돼갔다. 의사가 진단을 하는 와중에 남편의 통증은 더 극심해져서 침상과 바닥을 뒹굴며 고통을 호소했고 구토도 시작됐다. 완도에서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빠르게 CT를 찍고 통증 완화를 위해서 몰핀을 투약해줘서 이렇게까지 오래 아파하진 않았었다.

아래 쪽에 노천 온천이 있는 폭포

이번에도 통증이 줄어들지 않아 몰핀을 투여해줬다. 의사가 예상하는 병도 요로결석인 것 같았다. 그나마 경험했던 터라 덜 당황했는데 처음이었다면 타지에서 정말 놀랬을 터. 병원에 도착한지 두 시간이 되도록 별 차도는 없었고 의사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나중에 영어로 통역을 해주기 위해 현지인 남자분이 의사와 함께 왔는데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CT촬영을 해야 하는데 이 병원에는 없어서 1시간 거리의 더 큰 병원으로 가야한단다. 촬영 후에 결석이 크면 수술을 할 수도 있다고... 그 때서야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의료 시스템이 어느 정도인지도 잘 모르는 에콰도르에서 수술을 해도 되는 건지, 수술이 간단하다고는 알고 있지만 여긴 한국이 아니니, 수술법이 달라 오래 입원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진단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그 때부터 내 얼굴이 사색이 돼서 수술에 대해 묻기 시작하자 남자분이 차분하고 자세하게, 만약 하게 돼도 매우 간단한 수술이며 하루면 퇴원을 하게 될 것이고, 수술을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약처방만 받을 수 있으니 아직 섣부르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줬다. 응급차로 후송할 것이고 하룻밤을 그쪽에서 보낼 수 있으니 간단히 짐을 챙겨오라고 했다. 놀란 것은 두 병원에서 나오는 비용을 청구하기 위해 서류가 필요할 것 같다고 하니 에콰도르 국립병원은 모두 무료란다!! 어차피 보험이 있어서 돈이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신없는 이 와중에 서류 챙길 일 없다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에콰도르가 다시 보였다.

다음날 멀쩡하게 시내 관광 중

난 정신없이 숙소에 가서 간단히 물건을 챙겨서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는데 그 남자분이 아직도 가지 않고 남편 옆에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설명은 다 해줘서 돌아가도 됐을 텐데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리가 응급차에 탈 때까지 옆에서 계속 설명해주고 남편보다도 놀란 나를 진정시켜주려고 애썼다. 지금 생각해도 어찌나 고맙던지...

내 평생 국내도 아닌 먼 타지에서 응급차로 도로를 가르며 달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사이렌을 울리며 퇴근시간 차들을 가르고 1시간 동안 달렸다. 다행히 응급차에 탈 때까지도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찾던 남편이 이동 중에 갑자기 호전되는 것 같다고 했다.

큰 병원에 도착. 응급차에서 내리자마자 남편의 한 마디, “다 나았다, 집에 가자!” ㅡㅡ;; 완도에서도 비슷했다. 검사 결과 기다리다가 소변으로 배출돼서 숙소로 돌아가 너무나 말짱하게 해수욕을 했었다.

 

공원의 크리스마스 장식

그래도 잠깐 괜찮아진 것일 수 있으니 검사를 받자 하고 병원에 들어갔는데, 완전 깜놀! 갑자기 한국말이 들린다! 젊은 한국 여자 의사 선생님이 계시네!!! 정말 놀랄 노자다! 통역은 또 어떻게 하나, CT결과 수술을 하면 어쩌나 했는데! 한국 의사샘이 나타난 순간 모든 걱정이 싹! 사라졌다.

너무 감사하게도 우리가 갈 때까지 응급실 담당도 아니신데 계속 왔다갔다 하시면서 통역해주시고 간호사에게 대신 말해주시고 결과도 설명해주시고 약 사는 곳도 같이 가주시고 급기야 나중엔 택시까지 불러주셨다. ㅜㅜ 이 곳에서 한국 환자는 처음인지 동료 의사, 간호사들도 “한국인이네!”하면서 의사 샘한테 한 마디씩 하는 것 같았다. 4일에 한 번씩 하는 당직날인데 운 좋게 딱 맞춰서 왔다면서 한국 사람 처음이라 넘 반갑다고... ^^

 

정말 호전된 게 맞는지 이후로 통증은 거의 가라앉았고 CT에도 결석이 보이지 않는다고, 혹시 나중에 다시 재발할 경우를 대비해서 약처방만 받았다. 얼마나 다행인지...

올 때는 응급차로 왔는데 가는 건 알아서! 밤 12시가 넘어서 택시를 어찌 잡아야 되나 했는데 마침 택시를 하시는 선생님의 친척분이 친히 우리를 바뇨스까지 데려다 주셨다. 가는 동안 속이 좋지 않아서 몇 번 차를 세워야 했고, 늦은 밤 운전해주시는 게 너무 고마워서 알고 있던 택시비의 두 배를 드렸다. 우리가 받은 도움은 그 이상이지만 표현할 방법이 이 것 밖에 없어서 안타깝다.

웃지 못 할 일은, 숙소로 돌아와 소변 보던 남편의 외침, “나왔다!”

왠지 허무하군... 반 나절 내내 놀래키던 원흉이 소변 한 방에 해결되다니...

생각해보면 모든 게 다 하늘이 도운 것 같다. 계속 이동하다 일주일이나 머무르게 된 바뇨스에 와서야 아픈 것도, 친절한 호스트 아주머니도, 내내 나를 안정시켜주고 통역까지 해주던 현지분도, 천운 같이 만난 한국 의사 선생님도, 마침 택시를 하시던 친척분도, 마지막으로 이 모든 비용이 무료인 에콰도르 의료시스템도...

수술까지 가지도 않고 천만다행으로 하룻밤 만에 나은 것도, 한 번 경험한 적 있던 병이었던 것도... 지금까지 1년 가까이 여행하면서 별 탈 없어서 참 운이 좋았다 했는데... 그나마 큰 사고 없이 이렇게 지나가서 정말 정말 다행이다.

다음 날은 언제 아팠냐는 듯 시내 구경을 다녔다. 둘 다 피곤해서 한 두 시간 만에 돌아와 또 뻗긴 했지만... 벌써 꿈이었나 싶다... 앞으로 좋은 일 더 많이 하면서 살아야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금처럼만 건강하게 여행할 수 있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