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준비 - 짐 정리/중고마켓,벼룩시장 활용-
여행 결심을 하고부터 곧장 생각한 것이 짐 정리였다.
어떻게든 가지고 있는 짐을 줄여야 박스 수가 줄어들 것이고 부모님 댁에 맡기기도 수월하니까.
어떤 분이 벼룩시장에서 물건들을 팔았다는 블로그를 보고 우리도 주변에 벼룩시장이 있는지부터 알아봤다. 맘카페에서 운영하는 지역 벼룩시장을 발견하고 곧장 가입해서 시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벼룩시장이 열렸고 개인 참가자를 많이 받고 있었다. 신청해놓고 팔만한 물건들을 찾아봤다. 근데 찾아보니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옷은 물론이고 신발, 가방, 안 쓰는 캠핑장비, 이제는 쓸 일 없는 넥타이 수십개... 이 많은게 어디에 쳐박혀 있었는지....
별로 기대하지 않고 나눔하듯이 팔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처음엔 별로 신통치 않았는데 나중에 안 팔릴 것 같았던 잡화들이 팔리면서 재미가 쏠쏠해졌다. 중반부터는 팔을 걷어붙이고 가격 흥정까지 해가면서 돈 버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다 끝내고 주머니 속 돈을 세보니 10만원이 훌쩍 넘는게 아닌가~
그 후로 두 번 더 참여했는데 예상보다 괜찮은 수입을 벌었다.
그리고 덩치가 큰 물품들은 중고마켓을 이용했다. 남편은 '중고나라' 같은 카페로 캠핑장비를 주로 팔았고 나는 '당근마켓'이라는 앱을 이용해서 팔았다. 이 앱이 생각보다 괜찮은게 내가 사는 가까운 지역의 사람들에게 파는 거라서 직거래를 할 수 있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대부분 팔렸다. 그동안 내가 판 물품(화분, 부츠, 화분받침대, 소형가전,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도 20만원은 넘게 벌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돈을 벌 수 있는 것 뿐만 아니라 쓰지 않던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생활방식이 바뀌게 되었다. 크게 필요하지도 않는 물건들을 이렇게나 많이 사들였구나, 얼마나 낭비하면서 살고 있었나를 눈으로 보고 나니 다음부터는 물건을 살 때 정말 나한테 필요한 물건인가, 집에 있는데 단지 충동적으로 구매하는 건 아닌가? 매번 질문하게 되고 항상 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몇 해 전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산 이백만원 짜리 명품백도 점점 구식이 될 것이고 시골로 내려가면 들고 나갈 곳도 없겠다는 생각에 중고가를 알아보니 50만원을 겨우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정말 내 자신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내 나이 정도 되면 명품백 한 두개는 가질만 하다고 생각했고 주변 사람들도 대부분 그 정도는 가진 듯 하고, 남들한테 보여지는 내 모습이 중요하게 생각됐다. 근데 내가 가진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이제는 정말 필요한 것 외에는 눈에 별로 들어오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내가 입는 옷이 어떻게 보여질지 신경쓰지 않게 됐고 새로운 옷을 사기 위해 돈을 쓰게 되는 일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직은 직장 동료들이 매일 멋진 옷을 바꿔가면서 입고 오는 것을 볼 때면 '커리어 우먼의 모습이 저런거구나' 싶은 마음에 멋져 보일 때도 있다.
하루는 가까운 서점을 두고 운동삼아 몇 정거장 떨어진 판교 현대 백화점에 갔다. 결혼 전에는 백화점에서 모든 옷과 잡화를 샀는데 결혼하고 나니 백화점 옷 가격이 너무 부담스러워 잘 가지 않게 되니 이제는 갈 때마다 시골 사람이 서울 구경온 마냥 그저 구경하는 곳이 돼버렸다. 생활방식이 바뀌고 나서 가게 된 백화점은 정말 이제는 딴 세상이 돼버렸다. 파는 물건들은 당연히 앞으로 살 일 없는 구경거리가 됐고 무엇보다 그 안을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신기했다. 다들 모피코트나 비싼 브랜드 옷을 입고 명품 가방은 기본으로 하나씩 들고 함께 다니는 아이들도 모피코트 아니면 예사롭지 않은 패션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들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어서 저런 옷, 가방들을 살 수 있는 재력이 될까? 아니면 그 정도는 아니지만 좀 무리해서라도 예전의 나처럼 한 두 가지씩은 갖추고 사는게 미덕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당연히 그들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고 그럴 능력도 있다. 근데 달라진 건 내 마음이였다. 그런 것들이 이제는 부럽다기보다 그냥 의미없는 것들이 돼버렸다. 그런 것들보다는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중요하고 그것들을 이루어 나가려면 좀 더 실질적인 씀씀이가 필요하고 그러다 보니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거다.
좋게 포장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대놓고 말하자면 그냥 예전보다 궁핍해진 것이다. 능력이 되면야 왜 그렇게 살지 않겠는가? 내가 얼마 전까지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하지만 이런 궁핍함이 지금은 내 자신의 겉모습보다는 좀 더 알맹이에 집중하게 된 것 같다. 내 삶의 알맹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앞으로 즐거우면서도 길게 일할 수 있는 것, 건강하게 잘 사는 것....
때론 힘든 일을 겪으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왔을까 원망스럽다가도 이런 시간들이 결국 나한테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는 걸 알았다. 진정 내 걱정을 해주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내 남편이 얼마나 나에게 힘이 되는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내 삶에 무엇이 중요한지... 너무나 많은 깨달음들을 주었다. 지금도 앞으로 겪게될 난관들이 두렵긴 하지만 적어도 막연히 겁만 먹고 있지는 않을거라는 건 알게 됐다. 이 역경들이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