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42~244, 멕시코, 산크리스토발] 산크리스토발 명절맞이 파티, 드디어 한달살이 집을 구하다!
9.24~9.26
-집구하기 팁 : 동네를 다니다가 ‘SE RENTA'(렌트), 'SE VENDE(판매)'라는 글을 써붙여 놓은 곳을 두드려보거나 적혀 있는 번호로 전화해서 주인과 직접 거래하면 저렴함. 하지만 대부분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스페인어를 하는 분의 도움이 필요함. 혹은 다소 비싸지만 호스텔이나 호텔을 직접 들어가 보는 것. 4천~5천 페소가 현지 최대 금액이라고 보면 됨. 침실만 구하면 2천 정도의 방도 많음. 먼저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서 정보를 최대한 얻는 것이 가장 좋음.
9월 24일은 추석. 며칠 동안 계속 파티를 했지만 추석인데 그냥 넘어가기 아쉬워서 간단히 다함께 저녁이나 해먹자고 운을 띄웠다. 다들 외국에서 처음 맞는 명절이라 분위기를 내고 싶었는지 흔쾌히 동의~ 혼자만의 착각인가? ㅋㅋ
처음 계획은 수제비에 내가 잘 하는 양배추전만 하기로 했는데 장보러 가기 전 리스트를 적다보니 다들 하나씩 추가해서 전이 다섯 가지로 늘어났다. 그리고 사장님 두 분은 잡채를 하기로~ 장은 힘 좋은 남자들이 가기로 했다. 음식값은 당연 더치페이~!
재료가 도착할 때까지 각자 스페인어를 공부하기로 하고 수다도 떨면서 기다리니 시간이 금방 간다. 우선 재료를 다듬어 놓고 저녁에 다시 모여 곧바로 음식을 하기로 했다.
중간에 스페인어 수업이 있었는데 4번 밖에 못 한다고 진도를 엄청 나가면서 숙제도 왕창 내주셨다. 영어랑 비슷한 문법과 어휘가 많아서 다른 외국어보다는 나은 것 같은데 이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하자니 기억력이 3초라 좌절할 때가 많다. 공부도 다 때가 있다더니..ㅜㅜ
호베네스 거의 직원, 상곤씨 ㅋㅋ
5시 반에 수업이 끝나자마자 음식 만들기 돌입~ 제사를 치러본 적이 있는 내가 본의 아니게 주도를 하게 됐지만 전을 부치는 건 다른 분들이 다 하셨다. 특히 자전거 여행자인 상곤씨는 집구하기가 어려워 호베네스에서 한 달을 살기로 해서 모인 사람들 중 가장 오래 호베네스에서 머무는 사람이 됐는데 사람이 어찌나 부지런하고 싹싹한지 모두가 직원이라고 부를 정도로 참일꾼이다. 육전을 해보겠다고 해서 다들 말렸는데 결국 가장 맛난 전으로 낙점~
호베네스 요리꾼 사장님
사장님이 마트에 흰살 생선을 판다는 정보를 주어 생선전을 하게 됐는데 그게 바로 돔! 전을 해놓고 맛을 보니 그렇게 고급질 수가 없다. 다들 전중에 상전이라고. ㅋㅋ
육전과 생선전에 밀려 찬밥이 된 내 필살기 양배추전~ㅋㅋ 양배추 처리하고 싶을 때 꼭 한 번 해보시길~ 오꼬노미야끼처럼 고소해서 생각보다 맛나다!
음식솜씨 있는 남자 사장님이 만든 중국식 잡채는 단연 인기 1위! 말이 필요 없다.
다같이 모여 전을 부치고 있자니 명절 분위기 지대루 난다! 한국에선 명절증후군 얘기가 태반인데 이 곳에선 넘나 즐겁게 자발적 명절증후군을 맞고 있다. 부모님이 명절인데 쌀밥도 못 먹나 싶어 메시지가 계속 날라오는데 한 상 떡 차려진 사진을 보내드린 후부터 걱정 뚝!
차려 놓고 보니 정말 어마어마하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와 방법으로 하다보니 전만 많아졌지만 먹으면서 다들 흡족해 했다. 배불러서 먹지 않겠다던 수제비도 들깨가루(호베네스 협찬)를 넣고 구수하게 끌였더니 다들 한 숟가락씩 보탠다.
온전한 휴가였던 명절 황금휴가가 결혼 후 시댁과 친정 나들이가 되면서 달갑지만은 않았는데 이번 추석은 결혼 후 가장 즐겁고 추억 속에 남을 명절이였던 것 같다.
다음 날부터 다시 숙소 찾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행운이 가까이 있었다. 차물라 마을에 다녀온 후 대 여섯 곳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와 퍼져 있는데 호베네스 여사장님이 문득, 친구가 사는 집에 방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 우리도 몇 번 본 적이 있는 분이였는데 사는 곳이 가격도 괜찮고 컨디션도 좋다는 것이다. 곧장 연락을 해서 집을 보기로 한 날이 추석 다음 날.
약속한 시간에 방을 보러 갔다. 위치도 과달루페 거리에서 한 블록 옆이었다. 한 건물 안에 여러 호수가 사는 아파트 같은 구조인데 모든 호실에 부엌과 화장실과 침실이 따로 있었다. 그동안은 호스텔이나 호텔을 위주로 보러 다녀서 대부분 부엌과 화장실이 공용이었다.
방은 생각보다 좋았다. 호베네스처럼 햇빛이 직통으로 들어오진 않지만 어둡진 않았고 부엌살림도 부족하지 않게 갖춰져 있었다. 한국 분들이 사는 방도 구경했는데 우리가 본 곳보다 빛도 잘 들고 크기도 약간 더 컸다. 10월 중순이면 떠나신다고 해서 우린 절반은 작은 방에서 절반은 한국 분들이 살던 방에서 살기로 계약했다.
일주일 동안 숙소 찾느라 그렇게 헤메고 다녔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좋은 방을 구하게 될 줄이야.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스페인어 수업도, 자수 수업도 맘껏 받아봐야쥐~
자수 숙제 중
오후엔 먼저 집을 구한 재희씨네 집들이에 갔다. 밥보다 숙소를 중하게 여기는 이 분들이 얻은 집은 그야말로 산크리 호화주택~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난다.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 중 가장 좋았던 부다페스트 방이 생각난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 여행자에게 숙소 컨디션은 무시 못할 요소다. 때로는 경비 때문에 좋은 숙소는 꿈도 못 꾸지만 가끔은 호화로운 곳에서 푹 쉬는 것도 활력이 된다.
26일은 호베네스 체크아웃 날. 아침부터 기분이 묘하다. 맛난 조식과 매일 얼굴 보던 사람들과 북적북적하게 지내다가 작고 어두운 집에 둘이 덩그러니 지낼 생각을 하니 우울해졌다. 그나마 앞집에 한국 분들이 계셔서 다행이다. 어찌됐든 빨리 적응하고 한달 동안 잘 지내봐야지!